셀파도와 같은 부흥 CELL Revival !
 
작성일 2020.07.02. 00:22:40   작성자 관리자
제목 남선교회 김용우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모태신앙이셨던 어머니께서는 어렸을 적 주말마다 형과 저를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직장생활을 하셨지만 초등학교 시절 IMF를 겪고 나서 집안에 큰 빚이 생겨 생계가 어려워졌고 어머니께서는 빚을 갚기 위해 각종 노점 장사부터 꽃가게까지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보니 부모님께서 싸우시는 일이 잦아졌고 집안 분위기는 늘 냉랭했습니다. 저는 늘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느꼈고 중학교 2학년 무렵엔 밤에 잠을 자면 늘 악몽에 시달렸고 헛것을 보기도 하며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처음엔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시다가 저의 이상행동이 점점 더 심해지자 지인을 통해 저를 무당에게 데리고 가셨습니다. 굿을 해야 한다는 무당의 말에 어머니는 의심의 여지없이 진행하려고 하셨지만 준비 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문득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셨고 권사님이셨던 저희 외할머니와 연락을 하고 나서 진행하던 모든 일을 접고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한 달 동안 함께 집에서 지내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하셨고 낮에는 학교에 다녀와서 저녁에는 목사님 집에서 잠을 자며 생활을 했었습니다. 한 달 동안 목사님께서는 새벽마다 늘 자고 있는 저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셨고 그 후 악몽도 꾸지 않고 헛것도 보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고 꾸준히 다니며 학생부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학교를 오게 된 저는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면서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문화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하나님과 멀어지자 안 꾸던 악몽을 다시 꾸게 되었고 몸과 마음은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신입생 무렵 우연히 전도를 하던 둔산제일감리교회 청년을 만나게 되었고 예배에 한번 와보라는 말에 저는 거부감 없이 친구와 함께 수요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예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회중 모두가 정말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했고 그들의 아멘소리에 굳어져 있던 저의 마음이 깨져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군 전역 후 고향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세상에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던 저는 둔산제일감리교회에서의 예배를 잊을 수 없었고 긴 고민 끝에 부모님과 상의 후 둔산제일감리교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다른 교인들처럼 하나님께 뜨겁게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교회에서 진행하는 말씀양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2년 7기 말씀양육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저의 내면의 바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동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었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그저 예배만 드리는 사람들 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교만한 것이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저의 더럽고 추악한 내면을 보여주셨고 교회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거룩한 사람인척 행동하다가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했던 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양육을 듣는 내내 그렇게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하게 해주셨고 하나님이 없이는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철저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고 예배의 모습과 평소 일상에서의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부분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죄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얻게 되었고 죄를 지었을 때 즉각 회개하고 일상에서 감사를 느끼며 인간적인 눈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영혼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2017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혼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내도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득이 많지 않았고 저 또한 개인레슨이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소득으로 잡히는 금액이 많지 않아 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종 대출 신청이 마무리 되던 날 은행에서 담당자가 심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누군가와 통화를 하였고 내용인즉슨 심사 기준에 맞지 않는 내용들이 있어 본사 측과 연락을 하였지만 본사 측에서는 그냥 승인을 해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담당자는 통화 후 승인을 해주라는 본사 측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아해 했지만 결국 대출은 최종 승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의 집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도에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었을 때 당시에는 왜 그런 시련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장년부에 올라와 셀사역을 하게 되면서 그 때의 아픔을 통해 나와 같은 상처를 받은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크고 값진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유산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얻길 바라면서 왜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주셨고 아내와 함께 지역선교를 통해 영혼을 위해 수고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정확히 지역선교를 다녀온 후 일주일 뒤에 귀한 자녀를 허락해주셨고 돌이 지난 지금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둔산제일감리교회에 온 후로부터 매년 기도소망서에 쓰는 기도제목중 하나가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교회는 다니시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늘 세상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셨는데 가족들과 함께 기도했을 때 삶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셨고 이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40일 말씀양육은 제 삶의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지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이 힘겹고 과거의 상처와 아픔으로 괴로운 분이 있다면 말씀양육을 통해 꼭 하나님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해결해주십니다.
끝으로 말씀과 중보기도로 사랑해주시는 목사님 사모님께 감사드리고 기쁨, 평안, 소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며 저의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0일 말씀양육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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