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파도와 같은 부흥 CELL Revival !
 
작성일 2020.03.01. 14:16:05   작성자 관리자
제목 여선교회 안서진
저는 시골에서 좋지 않은 가정형편과 술만 드시면 난폭해지시는 아버지, 순박하기만한 어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언니가 있지만 살갑지 않은 사이였고 저는 나 자신을 늘 남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없는 우울하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고2때 친구의 권유로 청주의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변하려 노력했고 늘 속으로만 간직했던 모델이라는 꿈을 품고 기도하며,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도 청주에 있는 시골교회를 오가며 봉사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인을 통해 서울에 있는 모델아카데미를 소개받았고 수료 후 모델생활을 하며 물질적으론 어려웠지만 꿈을 이룬 것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 때 했던 기흉 수술을 또 다시 하게 되었고 안정되지 않은 일의 불안함, 서울에서 시골교회로 오가며 했던 모든 일들이 버거워 도망치듯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결혼 후 강릉에 있는 시댁에서 지내며 결혼 한 달 만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 중반 신랑이 일을 마치고 오던 중 교통사고가 나서 상대방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고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구치소에 가게 되었고 저는 임신 중인 몸으로 남편이 차린 호프집을 한 달 넘게 운영해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약속하신 ‘야곱처럼 너를 키우겠다.’ 라는 말씀을 잊은 채, 도망치듯 결혼을 선택 한 것을 회개하며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끔찍하니 제발 고향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합의를 하여 큰 합의금으로 신랑이 구치소에서 나오며 저는 청주로 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조리원 생활을 하던 중 아이가 생후 8일 만에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충북대병원에 입원했고 입원 하루 만에 경기를 일으키기까지 해 3일이 고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랑의 권유로 강릉에 있는 병원으로 아이를 옮겨 몇 주 가량 항생제와 항경련제를 맞으며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저도 갑작스럽게 말판증후군이라는 희귀병으로 혈관이 찢어졌다며 응급실로 보내졌고 급하게 상행대동맥 박리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병원 생활 후,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경기와 발달지체, 지적능력 저하가 동반되는 희귀난치병인 영아연축에 걸렸습니다. 계속되는 경기약 증가와 부작용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 간신히 경기가 잦아들었지만, 몇 개월 뒤 다시 경기를 하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라는 병으로 악화 되어 더 이상 약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아 케톤식이요법 치료로 힘겹게 경기를 잡았습니다. 그 뒤 저와 아이는 아이의 발달치료를 위해 서울과 대전, 강릉을 오가며 끝없는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신랑이 사업을 접게 되었고 부모님과 아이를 생각해 참고 견디었지만, 큰 사고로 신랑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슬프고 힘들어 할 겨를도 없이 신랑의 사고 수습 후 그렇게 바라던 대전으로 이사왔는데 이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오는 지난 삶의 허망함에 의미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힘 빠진 생활을 했습니다.

그즈음 아이가 다니던 병원의 작업치료사분이셨던 셀장님께서 교회에 가보자는 권유가 있었고, 삐뚤어진 마음에 나 하나님한테 삐졌으니까 하나님이 직접 내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라고 어깃장을 부렸습니다. 계속된 셀장님의 권유와 저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는 말에 감격해 둔산제일감리교회로 나오게 되었고, 셀로 인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했고, 셀장님의 연락이 부담스러워 셀장님께 “나 그냥 조용히 교회만 다닐게요.”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그리웠던 저는 예배시간 주일학교를 통해 아이를 봐주는 교회 시스템에 감사하며 예배드릴 때마다 은혜 받았고, 40일 말씀 양육으로 변화 받았다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나도 하나님을 만나 나를 향한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어 2017년 2기 말씀양육을 듣게 되었습니다. 말씀양육 중 지금 생활에 너무 만족하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 안에 해결되지 않았던 “왜요? 근데 왜 이렇게 까지요? 이렇게 까지 모든 걸 최악으로요?”라는 질문에 “네가 그 순간순간 기도하지 않았다.”라는 심정을 주셨고, 말씀양육이 끝나갈 때 쯤 “이미 네 기도를 다 이루어 주었다.”라는 말씀을 주셔 감사하지 못한 것에 크게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와 함께 감사함으로 살아가던 중 18년 여름, 이번에는 하행대동맥이 파열 되어 다시 한 번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양육을 통해 회복한 후라 믿음으로 잘 견뎌냈지만, 수술 후 갑상선 항진증이 심하게 왔고, 아무것도 못한 채, 몇 개월을 누워만 지내다 조금 나아졌던 19년 2월 교회로 다시 나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과 아픈 아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몸과 마음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저의 삶을 두고 기도하는 날들이 많았고, 땅의 삶이 아닌 천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응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미 하나님을 만났고, 야곱처럼 쓰시겠다는 말씀을 받았지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며, 도망치듯 제 멋대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손을 놓지 않으셨고 기도와 찬양이 뜨거운 둔산제일감리교회로 인도해 주셨으며 말씀양육을 통해 회개와 기도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제는 지난날의 모든 고통이 감사가 되게도 해주셨습니다. 때론 힘들어 투정도 부리겠지만 천국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이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의 삶 잘 살아보겠노라 다짐합니다.

심한 고통과 절망에 빠지신 분들, 부디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빛이신 하나님께 매달리시고 40일 말씀양육을 통해 꼭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인도하심 따라 감사함으로 승리하시는 삶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으시는 목사님, 사모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립니다.


40일 말씀양육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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